도담

이도담의 작품에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독특한 시각적 강렬함과 개성이 있다.
그녀의 작품 속에 담긴 색은 적어도 세 가지 물감을 섞어 만들었다. 회화 속의 녹색과 보랏빛 계열의 색감은 매력적이다. 캔버스에 유화나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인물들은 작가가 배합한 독특한 색감으로 인해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겨낸다. 그녀가 자유자재로 구현하는 색은 20세기 회화에 혁명을 일으킨 야수파 화가 마티스를 떠오르게한다. 원색의 대담한 병렬, 강렬한 개성적 표현을 기도했기 때문이다. 21 세기의 상징으로 이도담이 떠오를 수 있는 이유다.
이도담은 전통적인 한국화를 벗어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천경자와도 닮았다.
전통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화려한 색채와 독특한 구성으로 신비스러운 분위기도 표출하고 있다. 환상적인 세계관을 결합한 짙은 색채의 채색화가 바로 그것이다. 천경자는 대다수 한국 화가들이 수묵화에 경도될 때 채색화를 지속했고, 추상화가 화단을 장악할 때에도 구상적인 작품세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화단에서 강렬한 색감과 문학적 서정을 토대로 독자적인 양식을 완성한 작가로 평가된다. 포스트 천경자로 떠오르는 현재의 이도담 또한 특유의 주제성을 가지고 인간의 불완전함 속의연함을 구현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서양화를 전공한 이도담은 국내외에서 다양한 전시에 참여했다. 특히 인물을 집중적으로 작업하는데, 이런 작업은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이라는 대상에 관한 관심을 반영한 것이다. 익명의 인물들을 통해 이도담은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아낸다. 작가는 이를 통해 선과 악의 이분법적 프레임을 탈피해 다양한 감정을 오가는 인간 본성의 입체적 양상을 과감하고 대범하게 표현한다.
이도담은 사람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얼마나 비이성으로 흘러가는지에 대해 관찰하거나 상상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낀다. 특히 결핍은 그녀가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주제다. 존재의 불완전함. 그것은 완전함에 대한 결핍으로 피조물로서는 누구든지 떠안아야 할 숙명이다. 인간은 매우 불완전한 존재다. 일찍이 괴테의 스승이었던 독일의 철학자 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을 아주 부족하고 불완전한 결핍존재로 정의했다. 완벽을 위해 노력하더라도 온전히 충족될 수 없는 부분이 있고, 자신과 타인의 부족함을 깨닫는 과정에서 배움을 얻을 수 있다. 그런 결핍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끝에 예술 작품이 탄생하기도 한다. 모든 내적인 존재들은 결핍이라는 공통된 접점으로 맞물려 있다. 얼굴, 몸짓, 자세 등의 윤곽들은 그들의 내면에 도사릴 무언가를 설파한다.
작가는 사람들의 육체에서 어떤 불완전한 생기를 포착한다. 결핍된 주체가 외부 세계와 맺는 관계는 어딘가 경색되고 냉각되어 있으며, 유약하고 때때로 멸시받거나 도태된다. 이들은 괜찮은 옷을 입고, 그럭저럭 안락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육신의 굳건함을 과시할 수도 있으나, 내면에는 첨예하고 단단한 가시가 돋쳐 두꺼운 외피를 뚫고 나와 서슴없이 자신과 타인을 찌른다. 작가는 내면을 서술하는 몇 개의 단락들, 이름과 색채가 삭제된 익명의 이미지들, 보편적이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를 한데 모아 결핍된 개인을 그려낸다. 인물들은 자신의 약함을 드러내며 오롯이 존재한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고 때때로 외면하며, 또 때로는 억압과 포용, 미움과 연민의 양극을 오가면서 중간지점을 찾아 나간다.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은 표정이 없다. 삶에 닥친 고통 앞에서 인물들의 태도는 비극적이지도 희극적이지도 않다. 그들은 의연하다. 그녀는 작품으로 나와 같은 사람, 당신과 같은 사람이 도처에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고, 비이성적으로 구축된 이 허구의 이야기들이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불완전한 존재라는 점에 서 작품 속 낯선 인물은 곧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일 수도 있다.
사람은 상대방을 통해서만 자기 자신에게 도달한다고 했던가.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서로 반목하면서도 그 사이에서 자라나는 기이한 유대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종래에 한 사람은 비로소 그녀 자신이 된다. 이도담은 그녀의 마음이 어떤 궤적을 그리며 이동하는지, 또는 이동해 왔는지 탐색하고자 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감상자들이 묻어둔 찰나의 감정이나 기억이 떠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밝힌다. 결핍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작품은 부족함을 이해하고 그것을 사랑하는 과정으로 나아가는 그림이라 할 수 있다. 이도담은 유약한 것과 비틀린 것이 그저 그 자리에 담담히 존재하는 세계, 타자와 자신의 결핍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언젠가 불완점함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에까지 다다르는 세계를 구축하려 한다.
전 세계적인 쇼크, 코로나 블루시대에 살고 있은 우리는 결핍과 고립의 시대에 숨 쉬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미지의 두려움이 불완전하고 불확실한 삶을 잠식하고 있고, 인간은 물질적 정신적인 결핍에 신음하고 있다. 이러한 결핍은 예술 장르에서 인간 구원에 대한 실마리를 푸는 예술의 자궁과도 같다. 신예 이도담 작가 또한 오래 전부터 결핍이라는 키워드에 몰입했고, 그녀 작품에서 결핍은 한줄기 치유의 불빛을 발한다. 결핍은 때로는 수치심의 탈을 쓰고 우리를 옥죄이기도 한다. 수치심이라는 올가미 속에서 우리는 자칫 생명을 저버리는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결핍은 수치심이 아니라 치유의힘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의 결핍도 너그러운 시선으로 감싸 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텅 빈 결핍에서 비로소 인간 본연의 상처를 치유하는 치유의 힘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코로나 블루, 결핍의 시대에 작가는 부족함과 고독을 뛰어 넘은 진정한 위로와 사랑을 속삭인다.